
이곳이란 뭘까?
나는 뭘까?
세기의 명탐정, 플래너리 퀸은 언젠가 그런 말을 했었다. 나를 나로 정의하는 건 기억 하나 뿐이라고. 기억이 없으면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소녀는 이미 고착 상태에 있었다. 이도저도 못하는, 여기에서 부유할 뿐인, 휩쓸려갈 뿐인 자동차의 중립기어와도 같은. 나아가기에는 힘든 상태였다. 어쩌다가 그런 건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세기의 명탐정은 모든 걸 기억해야하는데도.
리미널리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무엇이 이곳을 정의하고, 무엇이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하는 걸까.
슈뢰딩거의 고양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플래너리 퀸은 아무것도 없는 지반 위에 서 있다. 잃을 게 없는 자는 지반이 무너져도 버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길 나가는 문제는 딱히 플래너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들 그렇지 않나봐.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은 어떤 사고 방식의 변화가 발생했냐 하면, 조금은 동요했을 지도 모른다는 점. 플래너리는 생각했다. 어쩌면 바깥은 겉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일에서는 객관적인 상태가 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 거라면…, 내 의지는 어디로 간 걸까? 내 의지를 지금에라도 잡아와야 하는 건 아닐까? 지금 이 상태에서도 무언가가 머리를 좀먹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재빠르게 펜을 들어 서걱서걱 전자노트 위에 써내려갔다. 쓸데없는 사고실험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특기를 쓰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도 어째, 플랜의 머리카락이 수면 위에서 떠다니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플래너리 퀸은 지금도 행복하다.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플래너리 퀸은 세기의 명탐정이 아니었다. 저런 말따위 전부 거짓말일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드물게 과묵했던 소녀는 오늘따라 이상한 사색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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