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달빛 아래의 샹그릴라처럼
나는 돌아오겠소
흩날리는 6월의 모래바람처럼, 분명히
카슈미르를 가로지를 그때
Led Zepplin - Kashmir
‘죽음의 한 가운데에 서 본 적이 있나?’
언젠가 앙겔로스의 대원에게 로지코는 그런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다. 언제였냐고? 그런 게 이제와서 중요한가. 로지코는 거짓말은 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죽음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 말 그대로 폭풍의 눈 안에 있었다.
로지코는 늘 죽음과 연관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늘 죽음을 ‘선사’하는 사람이었고,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군에 들어갔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죽음과 가까워짐을 실감할 수 있었으나, 끝끝내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군에서의 짧았던 생활을 끝내버렸다.
로지코 화이트는 변화하지 못했다.
그녀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의료 캡슐 안에서 눈을 떴을 때는 그러한 무력감만이 로지코를 지배했다.
L.W. 로지코 화이트는 세 명의 우주장 이후로 정신을 잃었었다. 어쩌다가 그랬더라?
하루하루 분위기가 달라지던 함내였지만, 로지코는 특히 이 날 더욱 따라갈 수 없었다. 평소보다도 인원이 줄어있었던 것이 느껴졌다. 격납고에는 건담 1기가 사라져있었다. 함선이 시원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따금씩 꽃잎이 휘날렸다. 로지코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을 받았다. 잘 모르겠다. 그런 공허를 이끌고 개인실로 사라져갔다.
머리가 아파…. 아니,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캡슐 안에 있었잖나. 그럴 일은 없다. 그저 그런 느낌이 든 것 뿐이다. 아까부터 이런 흐리멍텅한 생각만 되풀이되고 있는데, 어쩔 때는 이런 말이 입 밖으로도 나와서 곤란한 참이다. 5월 말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 때의 확신과 자신은 개인실 안에 울려퍼지는 시타르 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모랫바람에 전부 휩쓸려 없어져 간 것이 아닌가.
L4에서의 기록을 뒤늦게 열람하였다. 기가 찼다. 아니마 토키미온이라는 자가 말하는 것은 전부 헛소리에 불과하다. 에레보스는 명백히 ‘현 인류’에게 위해를 가하고 있다. 미래의 평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앙겔로스에 들어온다는 선택지는 사실, 완전히 틀렸던 것이 아닐까. 로지코는 점점 이곳의 사람들과 에레보스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혼란만 가중이 되었다. 나는 한낱 도구로 전락하기 위하여 이 곳에 온 것이 아니다…….
그래, 그러니까 생각났다. 세 명의 알량한 배신을 목격하고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받쳐 올라오고, 꿈틀대고, 참을 수 없어지고, 그걸 전부 트리거에 화풀이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Angelos never die 같은 문구는 버린 지 오래됐다. 나는 몇 세기 전의 총을 들고도 그 화를 전부 풀 수가 없어서…… 아아, 그리고 뒤에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가 났던 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는 건 치명상은 아니라는 거겠지. 실제로도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다. 24세기의 의료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벌써 흉터가 아문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리하여 흐려진 기억의 완성이다. 무슨 짓을 한 거지? 헛발쏴서 중요한 전투에, 안 그래도 마이스터 한 명 잃은 판에 전력을 더 손실시키다니 …. 심지어 한 명을 더 잃었다. 마이스터 실격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감정도 이 조직에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직도 나의 진짜 감정을 모르겠다.
로지코는 급하게 시타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음악을 껐다. 모랫바람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초침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거지? 노래를 또 끄니까 이런 압박이.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로지코에게 더이상 앙겔로스는 있어도 될만한 그런 곳은 못 됐다. 어제의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남아있는 건 한 순간의 감정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일부 사람들의 언질이 떠올랐다. “후회하지 않도록 하자.”, “오늘의 너는 지금까지 중에 최고였어.”, “그렇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어?”,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치 않는다 약속할 수 있겠나.”…. 자신감이 없어졌다. 도망치지 않기로 했는데, 그럴 자신이 없어졌다.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한 건 맞다. 그러나, 자신은 전혀 변화한 점이 없다는 그 아이러니함이…, 괴리를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차라리 환각이라도 보였으면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손에 넣고 싶었던 건 사실 있었을까? 아니, 이렇게까지 해서, 라고는 해도, 충분히 노력한 것도 아니지 않나. 고뇌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로지코는 답 없는 질문을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세계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나는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인가? 살갗이 차갑다. 머리가 축축했다.
끝까지 로지코 화이트는 솔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깨어난 지금도 어쩔 수 없이, 그저 감각이 이끄는대로 총과 조종간을 잡으러 가는 것이었다. 후회, 의심, 그런 건 머리만 비우면 안 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의 로지코는 그런 걸 전부 놔뒀다. 그럼 나의 존재의의는 어디로 가는 건데? 몰라, 힘들어…. 모든 질문에 지금은 답을 보류하여야 한다. 침묵의 미덕을 지켜야 한다. 침묵은 오류보다 낫다.
무리 없이 잠에 드는 피앙세
영원을 손금처럼 쥐고
빗살 같은 날짜들
멍청한 우리 결속
흥분되는 D-1
실리카겔 - Tik Tak 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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