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Fight The Music
카테고리
작성일
2021. 8. 4. 23:33
작성자
모래석영

슈게이징 좋아합니다. 죄송합니다. 쓰다 보니 너무 전위적인 글이 되었습니다.

REFERENCE  돌아가는 펭귄드럼 Mawaru Penguindrum  DEAR FUTURE/COALTAR OF THE DEEPERS  소녀 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운명의 과실을 함께 나누자…
나의 사랑도, 너의 벌도, 모두 나눠가지는 거야

 

 

 - 우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끝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과

 근데 이상하다, 만져지진 않네

 죽어도 앞이라곤 보이지 않는 암백의,

 방. 공간? 벽은 보이지도 않는다. 당연하려니와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정의 내리는 건 포기했다.

 

 - 그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귓가에서는 미미하게 슈게이즈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다지 취향이었던 건 아닌데. 웅얼거리는 가사가 괜히 뇌리에 박혀서는 떠나가지도 않는다. 음, 그러니까. 툭 까놓고 말하자면 이래서 슈게이징은 좋아하지 않았다. 자주 들었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가 스쿨에서 한창 홀로 고생하던 때라 더 그랬던지도 모르겠다. 들릴 듯 말 듯 부르는 게 괜히 심장을 심해에 빠뜨려놓고 주무르는 거 같아서. 아이러니하게 기타 리프는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 소음 같은 음악 누가 듣냐 그러기도 했겠지만… 

 왜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지. 그렇다곤 해도 이런 곳에서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게 더 대사 아닌가. 대강 꿈이겠거니 하고는 있다. 이런 공간이 현실에 존재할 턱이 없었다. 사방이 백색으로 들어차있다―이 표현만 보면 단순한 촬영장 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설명하고도 또 동떨어진 느낌이다. 전혀 벡터고 좌표고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느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도 그럴게, 내가 보기에 지금 나는 점점 투명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떠올려보자면, 나는….

 

 - ‘혹시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거라면 우리들은 어째서 발버둥 치고 있는 걸까’

 얼핏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마 동료였던 것 같다. 날 지지리도 싫어했던…. 그런데 그건 날 싫어한 거였을까? 사실 나의 그림자를 싫어했던 건 아닐까.

 우리가 이단일 가능성도――정해진 운명 따위를 입에 담던 녀석은 그렇게도 말했었다. 모두가 격하게 부정할 때, 애초부터 본래의 계획 같은 건 알지도 못했던 나는 뭐라 말을 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계획이라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순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도 되는 건가? 적어도 그것이 숙명이라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이 고작이라는 건가? 이렇게 의문을 가지고는 있지만, 나는 단순하게, 또 거리를 느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이런 고뇌는 성미에 맞지 않았다.

 아마 앞서 한 얘기는 그들도 한 번 즈음은 해보았을 생각일 것이다. 확신이 있었다. 운명이라는 단어에는 꼬리표처럼 늘상 붙는 의문점이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혼자 벗어나지 못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냐는 말이다.

 

 나는 슬슬 일어나기로 했다. 물론 깰 기미가 보이지는 않는 꿈이다만, 어떻게 해서든 걸어보기로 했다. 주저앉고 있어서야 저 백색이 내 머리 안까지 쳐들어와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무맹랑한 감각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감각 없는 감각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과가 이렇게 많이 떨어져서 버틸 수도 없었다. 내가 맞거나 한 건 아니다. 밟은 것도 아니다. 정확히는 그럴 수 없었다.

 

 

 - 그건 네가 아냐

 처음부터 떠올려보자면 나는, 내 이름은, 라일 디란디. 다른 이름은 Gene-1, 또 다른 이름은 록온 스트라토스

 출신지는 AEU의 아일랜드. 29살. 가족으로는 어머니, 아버지, 형, 에이미…. 어렸을 적에는 라이플을 했고, 그러니까, 스포츠 말이다. 라이플을 그만둔 이후 집을 나와 중학생 때부터는 주니어 스쿨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고, 그러던 중 형을 빼고는 가족 모두가 테러에 휘말려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대로 졸업하여 대학을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이름 있는 무역 회사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리곤 집을 나라한테 뺏기고 돌아가는 정세 꼴이 말이 아니게 되자 카타론에 들어가서… MS 파일럿도 해보고… 어쩌다 형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CB에 영입되어서는…

 - 네 탓이 아냐

 여기까지 돌이키고 눈치챈 건데, 지금 내 기억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 몽롱한 정신과 저 머리를 깰 듯이 울려 퍼지는 슈게이징이 그것까지 방해할 순 없었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이렇게나 나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데 어째서 아직까지 나는 투명한 채 그대로인 건지…. 마치 아무도 없고, 이상기후의 정점을 찍은 듯한 무더위 속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 없는 구성에 매달리는 거다.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으니까. 제발 깨기나 했으면 좋겠다.

 - 슬픔이라면 이제 한가득이야

 하다못해 이 얼어 죽을 슈게이징이라도 누가 좀 꺼줬으면 좋겠다. 

 

 나 자신이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가뜩이나 그런 인간을 왜 이런, 오아시스 하나 없는 백색의 공간으로 내모는 거냐 이 말이다. 아, 진짜, 얼마나 걸었지? 싶었을 때 겨우 보인 게 뭐였냐 하면―

 

 눈에 생기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고 날개를 움츠리며 쓰러져있는 병아리.

 죽어있다. 직감할 수 있었다.

 크기나 날개의 상태를 보아선 중병아리인 것 같았다. 아, 이거…. 또 지독한 악몽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사과는 계속 떨어지는데, 얘도 투명했는지 그대로 병아리를 통과하여 아래로 떨어진다.

 옆에는 브로일러가 있다. 섬뜩한 생각이 든 나머지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보다 더욱 나를 착잡하게 한 것은, 다른 건 다 만져지지 않는데―병아리도 그랬다― 그 브로일러만은 선명하게 닿을 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미 거쳐왔구나, 나는. 이 브로일러를.

 브로일링 된 것이다. 선별되었고, 그나마 이 사회를 살아갈 수가 있었고,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럴 수 없었던 자들과 달리 나는 삶을 살아갔다. 형처럼…, 배제되지 않았다. 공허를 떠안은 건 별개였다.

 - 그렇게 둘은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래서인지 나는 이 사과를 들 수 없었다. 지나가는 걸, 또 떨어지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손이 없는 것도, 발이 없는 것도 입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신체는 제대로 존재하는데! 그래서 굳이 꿈이라는 공간을 쓴 걸까? 여기서 구성되는 육체는 정신상태의 부산물 정도밖에 안 되니까? 이게 나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겨우 보일 거 같았다. 이 브로일러, 투명한 존재, … 전부 니까…

 

 - 서로의 눈물은 보이지 않아

 처음 떨어진 건 뭘까, 아마 가족일까? 다 똑같아서 구분이 안 간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떨어져 지내고, 연락이 뜸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에게 주는 애정이 적어졌던 것뿐이다. 결국 가족들이 죽었을 때에도 별다른, 슬픔 같은 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대신 공허만이 존재해서, 그것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까진 그러려니 하지만, 다시 떨어진 건 분명 형일 것이다. 알아볼 수 있다. 내 옆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 무자비하게, 가장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졌으니까. 형의 죽음을 듣고도 나에게 있는 것은 조금의 당혹뿐이었다. 스물여덟 쯤 되니까 깨달았다. 나는 굉장히 결핍된 인간이라는 것을.

 그러한 인식들은 전부 운명론적이었을까? 운명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늘상 입으로 말해왔지만, 누구보다 순응하고 있던 건 또 나 자신이 아닌가…. 저항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마 그랬으니까. 카타론에는 왜 들어갔을까, 그 계기도 별 이타적이고 전형적이고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갈 곳이 그런 곳뿐이었으니까. 의지할 만한 게 레지스탕스 정도였으니까. 나는 늘 군소리 못하고 운명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근데 어딘가 저항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운명에? 운명보다는 그저…,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나에게 라고 말하는 것이 더 가까워 보이지만. 그러니 나는 늘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럴 그릇이 못 되었다.

 

 - 이윽고 둘은 귀를 기울였어

 가장 느리게 떨어지고 있는 저건, 음, 입에 담으려다 늘 실패하고, 겨우겨우 말꼬리를 흐리며 꺼내게 되는 그 이름. 어뉴, 어뉴 리터너―

 내게 처음으로 안도를 준 존재. 그보다는 내게 있어 그녀의 존재가 안도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어뉴를 품고 있을 때만큼은 결핍된 채로 있는 걸 유일하게 긍정할 수 있었다. 사람을 낙원으로 삼는 건 사람에게도 실례고, 정신적으로도 그다지 좋은 행위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결국 사람이고, 내게는 그것이 평온과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 발버둥 치고 싶었다. 그것도 처음인 것 같다. 처음으로 운명―계획 운운하는 것을 전면으로, 진심으로 부정하였다. 그러나 나는 무력하니까, 이리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어줍잖게 화풀이나 하고 그랬던 것이다. 말은 이래도 무겁다. 무거웠다, 그 현실이, 나에게는…

 내가 베어 문 과실은 이거구나. 그것만이 마치 필름을 매우 천천히 감고 있는 듯 느리게 떨어지고 있으니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비현실이 맞긴 했지만, 더욱이나 말이다. 어째선지 그것만큼은, 내가 닿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 ――사랑의 언어가 들리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게 아니야.

 그걸 기점으로 머릿속을 휘저어놓던 슈게이징이 뚝, 하고 끊겼다. 내가 과실에 닿자 수유라도 잘라 갖다 놓은 듯 모든 것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떨어지던 투명한 사과들도 공중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이 무슨 초현실적인 현상인가. 

 그 대신 어느샌가, 내 입에서 그 웅얼대는 가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알던 노래였나? 그건 분명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즐겨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읊고 있었다. 

 지금, 그대로가 아냐.

 울려 퍼지던 목소리와 다르게 내 입에서 나오는 그 엷은 가사들은 정말 내 본연의 목소리라 더욱 이질감을 느꼈다. 적어도 어릴 적의 모습이었다면 그게 덜했을 텐데. 

 멈춰둔 비디오 속에서 혼자만 움직이는 기분이다. 굉장히 메타적인 시선이 되었다. 그렇게 한 입 베어 문 사과는, 그 행위로 하여금, 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보이는구나, 내 모습이. 보이는구나, 내 공허가.

 

 “잘 설명할 순 없지만…

 그러니까, 이 꿈은 운명에 대한 거다. 견딜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만히 서 있으면 알 수 있다. 줄어든 무게 310g, 떨어지는 사과 한 개, 자주 쓰던 샴푸, 거의 꺼내지 않은 지갑. 내게서 무엇이 없어진 건지, 내 공허가 무엇인지, 그걸 인식하라는 것이었다. 사랑으로서 그것이 채워질 수 있었다면 진작에 채워졌겠지. 나서 처음으로 진실된 사랑을 했었다. 그것이 날 채울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내 사랑이 바로 그 공허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메우려 해도 메워질 리가 없었다. 나는 그걸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회피 말고, 다른 방향으로. 정면에서 떠안는 걸로 해결을 봐야 한다. 그걸 마주하기까지 어언 몇십 년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어떠한들, 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닌가…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방향이라도 바꾸어야 하지 않나. 

 혹시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우리들은 어째서 발버둥 치고 있는 걸까.

 “그것마저도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 나는….”

 그리고 그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흐름을 바꿔보려 발버둥 칠 거야. 잘난 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이 그러라고 속삭일 거야. 그니까, 저기 저 거꾸로 떠오르고 있는 사과들처럼

 그제서야 노래도 멈추고, 이 끝없는 사고가 종국에 이르렀다.

 이젠 상쾌하게 일어나고 싶다. 

 


 

 이쿠하라 쿠니히코 작 ‘돌아가는 펭귄드럼’을 보시면 이해가 더 수월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전위적이고 횡설수설하는 글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무언가 이해를 하려고 들지 마시고 분위기만 봐주시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 정도만 되는 글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라일은 뚜렷한 변화를 하기보단 짊어진다는 느낌이 있다는 겁니다. 평범한 인간이고, 평범한 인간이니 결함도 있고, 그 결함을 굳이 메우려 하지 않아도… 굳이 어떠한 것에 매달리지 않아도, 그게 열등감이든 감정의 결핍이든 고립감이든, 라일은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점을요. 그걸 말하고자 했습니다. 라일은 강하니까요. 

 

'小説' 카테고리의 다른 글

#define _CRT_SECURE_NO_WARNINGS  (0) 2022.07.17
엘리시온으로 향하고 싶었다.  (0) 2022.02.23
윤곽있는 말 / 메이드래곤  (0) 2021.07.07
인간 반푼의 고려  (0) 2021.05.28
[부기팝] 빙수  (0) 20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