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팝이 깨어났을 때는, 미야시타가 한창 자신의 방에서 빙수를 먹고 있을 때였다. 부기팝은 깨어난 직후, 스푼을 들고 몇 초간은 움직이지 않았다. 들려오는 매미소리, 느껴지지는 않지만 찌는 듯한 더위(온도계가 있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눈 앞에 놓인, 곱게 갈린 얼음 위에 시럽을 끼얹은 모양새의 먹다 남은 빙수. 미야시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빙수는 그대로 놓고 갈 수밖에 없다. 부기팝이 깨어난 후는 항상 무언가를 할 겨를이 없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방 안의 전신거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잠시 바라보았다. 이것은 부기팝이 한 행동인지, 미야시타가 한 행동인지 알 방도가 없다. 이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일어나더니 옷장으로 가 가지런히 걸려있던 옷가지를 꺼낸다. 블라우스와 교복 치마, 긴 망토를 차례차례 꺼내고 아래 서랍장도 열어 모자와 벨트 등을 꺼낸다. 교복은 꺼내져 있던 것이 하복이니 그렇다 친다 해도, 부기팝이 항상 입고 다니는 긴 망토와 긴 모자는 누가 보아도 계절착오적인 복장이다. 겨울이었으면 따뜻했겠지. 부기팝은 습하고 더운 날씨를 무시한 채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갈아입는다고는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부기팝이니까.
손에 홀스터를 끼웠을 때는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는 않는다.
창문을 열고 순식간에 뛰쳐나간 부기팝은 평소와 같은 속도로 느긋하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전과 달리 바람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홀스터와 사슬이 짤랑짤랑 소리를 내고, 긴 망토가 바닥에 질질 끌리며 펄럭펄럭 소리를 낸다. 부기팝은 아무래도 미야시타가 먹다 남긴 빙수가 마음에 걸렸다. 미야시타 토우카에게는 또 민폐를 끼쳤어, 하고 눈을 감고 한탄한다.
"여름이야말로 세계의 적이 아닐까."
미야시타가 일전 읊조렸던 말이다(기억상으로는 그렇다). 부기팝은 그 말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아보인다. 하지만 굳이 소리 내어 대꾸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미야시타 토우카에게 미안한 것이 한두개가 아니게 되어버렸구나."
속도를 줄여나가며,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중얼거렸다. 햇빛은 눈부시기에 부기팝조차 눈살을 찌푸렸으며, 부기팝은 덥지 않을지 몰라도 몸에 땀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온도였으리라. 아무리 그래도 미야시타는 인간이다.
부기팝은 쓰게 웃음을 흘렸다.
"복장을 바꾸는 것도, 생각을 조금 해봐야겠구려."
그리 말하며, 와이어를 꺼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되었을까?
귀여운 걸 보고 싶어서 썼던 조각글입니다. 2020-07-17 오전 1:24.
'小説' 카테고리의 다른 글
#define _CRT_SECURE_NO_WARNINGS (0) | 2022.07.17 |
---|---|
엘리시온으로 향하고 싶었다. (0) | 2022.02.23 |
초월할 수 없는, 허물 수 있던, 투명한 존재 / 00 (0) | 2021.08.04 |
윤곽있는 말 / 메이드래곤 (0) | 2021.07.07 |
인간 반푼의 고려 (0) | 2021.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