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션카드 모래
純白忘却
KPC 이하 루하나, PC 니노마에 이치코
01. 도입
이치코는 루하나의 실종 이후 매우 피폐해진 상태입니다.
한 달 전,
이하 루하나:금방 돌아올게요.
-라는 말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떠난 루하나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히 탐사자의 곁으로 돌아올 터였던 루하나는,
이후 다신 만나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불행은 원래 이리도 불쑥 찾아오는 것이었던가요?
온갖 대중매체가 그 날의 참사를 알리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추락 사고라는 말이 빈번히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 모든 것이 '루하나가 사고에 휘말렸다' 는 사실 하나만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이치코는 그의 부재가 도저히 믿기지도,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요 며칠간 루하나에 대한 생각에 지나치게 사로잡혀있던 탓일까요.
혹은 너무 피곤했던 것이 이유일까요?
탐사자는 자신이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머릿속에서부터 울려오는 것 같은 전화 벨소리에 홀린 듯 걸음을 세웁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소리의 근원은 빨간 공중전화 부스.
원래 이 곳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던가 하는 의구심도 잠시,
애타게 울리는 소리는 마치 탐사자를 부르는 것만 같이 커져갑니다.
니노마에 이치코:... ...뭐야... ... 뭐냐고... ...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공중전화 부스로 걸어갑니다.
전화를 받을 수 있나요?
이치코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치코가 전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다대자,
잠시 치직거리는 노이즈가 출력된 후 누군가의 음성이 아주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 누구야?
전화기: ... ...안녕하세요, 니노마에 씨.
온갖 잡음과 기계음이 섞여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이질적인 목소리입니다.
어디서 전화를 걸고 있는 건지 그 목소리가 동굴마냥 울려퍼지는 것도 같습니다.
전화기: 니노마에 씨, 맞죠?
니노마에 이치코: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 너는 누구고 거긴 어딘데?
전화기: 그건... (잠시 망설이고는) 지금은 말해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에게 용건이 있어요. 끊지 말아주세요.
이치코에게 이런 공중전화로 전화할 사람이 누가 있었던가요?
귀를 바짝 대고 한 번 더 그 목소리를 들었건만,
특별히 떠오르는 인물은 없습니다.
이치코, 심리학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60/30/12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당신에게 친근하고 따뜻합니다.
그 호의를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유심히 들어보니, 다정하게 건네는 말 뒤에 지친 기색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용건이 있으면 빨리 말해줘... ... 얼른.(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듯 다급하게)
전화기: ...음. 저, 요즘 어떠신가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니노마에 이치코:... ... 그게 용건이야? ... ...(뜸 들이다가 웃고) 그래... 잘 지내고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힘들지만...
전화기: 그렇군요... 응,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담담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 순간,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마냥 전화부스가 크게 흔들립니다.
이에 놀란 이치코는 전화기를 놓치며 벽에 세게 부딪히고 맙니다.
유리문 틈새로 바람이 강하게 들이닥치고,
이치코는 손을 쓸 새도 없이 그대로 의식을 잃습니다.
02. 설원 雪原
정신을 차려보면,
이치코가 기대어있던 유리 너머로 한기가 느껴집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아까의 거리는 온데간데없고 사방이 눈에 뒤덮인 설원입니다.
니노마에 이치코:... 뭐야, 어디야. 여기... ...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히 와닿는 찬 공기에,
이치코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치코, 이성 체크.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60/30/12 |
굴림: | 72 |
판정결과: | 실패 |
(아니미친)
이성 2 감소.
그 때, 이치코가 일순간 놓쳐 전화선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수화기 너머로 그 사람의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뭐야... 수화기 들어봅니다.)
전화기: 니노마에 씨, 괜찮으신가요? 대답해주세요! 니노마에 씨!
니노마에 이치코:아니... 아니. 아니...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여기 어디야... ...
전화기: ... ...아, 다행이에요. 정신이 좀 드시나요? (당신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불행 중 다행인건지, 그 사람과의 통화는 끊기지 않은 모양입니다.
여전히 잡음이 심하긴 하지만,
이전보다 더 잘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이치코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면 그는 마치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갑니다.
전화기: 마음 같아선 당신을 데리러 가고 싶지만... 저는 여기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 니노마에 씨, 당신이 저를 찾으러 와주셔야 해요.
분명한 건, 저희는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거예요. 만날 수 있어요.
니노마에 이치코:갇히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이, 이런 설원에... ...
전화기: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니노마에 씨는... 반드시 이 곳에서 나갈 수 있어요.
이치코가 무슨 질문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그는 사그라질 듯한 목소리로 간절하게 읊조립니다.
전화기: 절 믿어주세요. 이 목소리만이 저희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니까... 부탁해요, 니노마에 씨.
이치코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는 그만 뚝 끊겨버립니다.
니노마에 이치코:... ... 계속 얘기해봐. 찾아줄... ... 왜 끊은 거야...
정신을 차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설원에,
같은 공간에 있다느니,
찾으러 가야 한다느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한꺼번에 닥쳐와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사람의 말대로 만나러 간다고 해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이치코, 지능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5/27/11 |
굴림: | 64 |
판정결과: | 실패 |
(아.....제발)
갑작스러운 상황에 많이 혼란스러울 테지요.
어떻게 할 지 침착하게 생각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우선, 이 전화 부스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테니까요.
니노마에 이치코:부스 문을 열고... 주변에 펼쳐진 설원을 두리번거립니다.
이치코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이치코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새빨간 황혼이 온 설원을 뒤덮고 있으며,
시야에 드리우는 것은 현실성이 없을 정도로 붉고 또 붉은 풍경입니다.
숨을 쉴 때마다 탐사자의 폐로 깊이 파고들어오는 찬 공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청량합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합니다.
탐사자는 자신이 서 있는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인위적인 냄새가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것을 미미하게 느낍니다.
이치코, 지능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5/27/11 |
굴림: | 3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건... 탄 냄새?
맡을수록 확신이 섭니다.
이 냄새는 분명 고철같은 것이 탄 냄새입니다.
이치코, 관찰력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70/35/14 |
굴림: | 6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냄새가 서린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집중해보면,
저 멀리 까만 덩어리같은 것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뭐지... 저건.(그 까만 덩어리 같은 것을 향해... 걸어가봅니다.)
근원지로 추정되는 장소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곳이 광활한 설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캐한 탄내가 느껴집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든 당신의 앞에는...
추락한 것처럼 보이는 비행기,
아니,
이제 더 이상 비행기라고 부를 수 없는 새까만 잔재 더미가 눈에 파묻힌 채 놓여있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어.
그 풍경이 쌓인 눈과 대비되어 괴리감과 알 수 없는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치코, 이성 체크.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8/29/11 |
굴림: | 82 |
판정결과: | 실패 |
이성 1 감소.
이치코, 지능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5/27/11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불현듯 탐사자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루하나도 이런 커다란 여객기를 타고 있었을 터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다시금 마음이 물먹은 듯 가라앉습니다.
탐사자의 손에 저도 몰래 힘이 들어갑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이게... 이게 뭐야...
그 때 찬 바람이 훅 불어오고,
이치코는 저절로 설원의 추위를 체감합니다.
여기에 가만히 서있을 수는 없겠죠.
움직입시다.
걸음을 떼면, 그 순간 이치코의 발치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듭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이건 또 뭐야...)
뭐가 걸렸는지 확인해봅니다.
눈으로만 보아서는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눈 속에 파묻혀있는 듯 해요.
니노마에 이치코:눈을 파헤쳐봅니다.
몸을 숙여 손을 뻗으면,
눈 속에 파묻혀있던 날카로운 파편에 그만 베이고 맙니다. (HP -1)
스며나오는 붉은 선혈이 새하얀 눈 위로 두어 방울 떨어지자
시신경을 자극하는 선명한 색의 대비에 막연하게 위기감이 엄습합니다.
물건을 주우면 눈이 후두둑 떨어져나가며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건... 향수병이네요.
푸른 색에 청량한 향이, 마치 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비행기 안 누군가의 소지품이었을까요?
향수을 손에 넣고 매만지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버리고 싶지 않고 버리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묘한 기시감이 깊은 곳에서부터 꾸물거리며 올라옵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이치코, 이성 체크.
니노마에 이치코:바다를 닮은 사람이 있었는데... 있었는데... ...
기준치: | 57/28/11 |
굴림: | 3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성 감소 없음.
이젠 정말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아가야겠지요.
통화의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이치코 자신보다 더 절박한 것 같았을 정도이니.
어쨌든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나을 테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무작정 발을 옮기던 이치코의 앞에는 어느새 붉은 노을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숲이 펼쳐집니다.
03. 설림 雪林
이치코가 숲으로 걸음을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 눈송이가 하나 둘 내려옵니다.
햇빛도 사라지는 마당에 눈이라니,
주위의 기온이 점점 떨어지자 자연스럽게 위기감이 닥쳐옵니다.
이치코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저 멀리서부터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눈을 밟는 소리는 점점 더 이치코에게 가까워져 이윽고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누구야!
노인: 젊은이가 이런 곳엔 웬일인가?
여긴 인적이 아주 드문 곳인데…. 이 곳까지 온 걸 보면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 같군.
니노마에 이치코:아... 아...(갑자기 예의 바른 인사...) 안녕하세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여긴... 어딘가요?
노인: 자네도 알테지만, 여기는 설원이지. (그 이상의 설명은 해주지 않는다.) 꽤 곤란한 처지인 것처럼 보이는군.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입니다.
노인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탐사자에게 말을 걸며 다가옵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다니, 의아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불행 중 다행인 듯 합니다.
노인: 자네가 괜찮다면 우리 집에 와서 밤을 보내는 건 어떤가? 눈은 금방 그칠테지만 추위는 심해질테니.
노인은 선뜻 이치코에게 제안합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음... ... ...(곰곰)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는 급하게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저도 급하고...
노인: 정말 괜찮겠나? 역시 하룻밤 정돈 쉬고 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이미 꽤나 피곤하지 않은가.
그 말대로, 이미 이치코는 꽤나 지친 상태입니다.
또한 일본에서의 일상적인 복장을 하였기 때문에, 이런 설원에서 오래 돌아다니기는 힘들 것 같아요.
니노마에 이치코:(이런...)
(이런 낯선 사람 집에 함부로 머물러도 괜찮은걸까? 아...몰라....) 그... 그럼 조금 실례할게요...
이치코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이치코는 노인이 말한 집으로 예상되는 작은 오두막 앞에 도착합니다.
창문으로부터 밝고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불빛에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 같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노인은 잠시 근처에 다녀올 곳이 있다며,
집안 물건들은 마음대로 써도 좋으니 편히 쉬고 있으라 일러줍니다.
그러고선 홀연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립니다.
이치코가 나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반겨줍니다.
일단은 집안을 조금 둘러볼까요?
니노마에 이치코:따뜻하다...
들어서면 무엇이 보이는지 두리번두리번 댑니다.
집안을 둘러보면, 작은 집이지만 나름 있을 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2층이기도 하고요.
조금만 살펴보다가 잠을 청해도 나쁠 건 없을 테지요.
특별히 둘러볼 만한 것은 1층의 ''거실''과 ''서재'', 2층의 ''침대방'' 정도인 것 같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아마도... 가장 먼저 보일 거실을 쭉 둘러봅니다.)
거실
문에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거실에는 불이 피워진
벽난로
와,그 앞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푹신한
소파
가 있습니다.벽난로와 소파 사이에 작은
탁자
가 자리하고 있습니다.니노마에 이치코:따뜻해 보이는 벽난로 주변으로 다가갑니다...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붉은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습니다.
또 이따금씩 회색 재가 피어오르는,
동화에서 나올 법한 벽난로입니다.
크기가 크진 않지만 조금만 가까이 가도 화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피로가 녹는 느낌이에요. (HP +1)
니노마에 이치코:(따뜻하다.........)
뭐 특별한 건 없겠지 싶어... 적당히 몸도 데웠겠다 소파 언저리로 가봅니다.
천 재질의 평범하고 아담한 소파입니다.
소파에 앉거나 휴식을 취한다면 벽난로의 온기가 따스히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치코는 그만 깜빡 잠이 듭니다.
잠시 뒤 깨어난 이치코의 꿈에는 언뜻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습니다.
미안해요… ""
그 뒤의 내용은 잠에서 깨는 바람에 듣지 못합니다.
어째서인지 그리운 기분이 이치코를 감싸옵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이치코는 알 턱이 없겠죠.
니노마에 이치코:왜... 잠든 거지...
잠도 잤겠다... 앉은 채 탁자를 한 번 봅니다.
유리 판이 덧대어진 낮은 나무 탁자입니다.
그 위에는 화병 하나가 놓여져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화병 안에 꽂힌 다른 꽃들은 전부 시들어 있는데 딱 한 송이만이 고개를 바로 처들고 있습니다.
다시 보니 꽃이라고 할 것도 아닌 것 같지만요.
이치코, 지능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5/27/11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얼음마냥 새하얀 빛을 반사하는 이 꽃은 아무래도 크리스탈로 된 모형인 듯합니다.
형상을 보니 양귀비를 본뜬 모양일까요?
탐사자의 손아귀 안 양귀비 모형은 힘을 주면 똑 하고 깨질 것만 같이 위태롭게만 느껴집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예쁘네...
이제 거실은 모두 둘러본 것 같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몸을 일으켜 조심스레 서재로 향합니다.
서재
은은한 목재 향이 감도는 서재로 걸음을 옮기면 보이는 것은 큰
책장
으로 세 면이 뒤덮여있는 방 내부입니다.니노마에 이치코:책장 되게... 크다.
(한 면의 책장을 가까이 가 살펴봅니다.)
꽂혀있는 책등에 쓰여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부 알아볼 수 없는 글자 뿐입니다.
다만 책 없이 빈 공간에 상자 하나가 보이네요.
니노마에 이치코:웬 상자가 있는 거지? 으으음... ...(상자 살펴봄)
열 수 있나요?
상자를 열어봅니다.
상자의 안에는 난잡하게 묶인 종이 뭉치가 있습니다.
이치코, 자료 조사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60/30/12 |
굴림: | 79 |
판정결과: | 실패 |
이런미친아..
종이 뭉치를 살펴보았지만, 글씨들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휘갈겨져 있어요.
이것을 읽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이 외에는 서재에서 특별해 보이는 점은 없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음... 그러니까... 2층이 있었던가...
2층으로 올라가... 침대가 있을 것 같은 방을... 살펴봅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어디선가 잔잔한 피아노의 음색이 들려옵니다.
느릿한 건반 소리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아늑한 분위기가 이치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침대 맡에는 칠흑같은 어둠이 담긴 창문이 나 있고,
창가에 라디오가 놓여져 있습니다.
바로 그 아래엔 작은
협탁
이,협탁 위에는 전등과 다이얼 전화기 한 대가 보란 듯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라디오는... 작동이 안 되나?
윗부분에 버튼 몇 개가 달린 낡은 라디오입니다.
스피커에서는 이치코가 따라온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작동시켜볼까요?
니노마에 이치코:작동시켜봅니다.
다른 버튼들을 눌러서 주파수를 변경하려 하면 유일하게 하나의 버튼만 작동합니다.
주파수에서 아나운서의 음성이 출력되어 나옵니다.
아나운서: 한 달 전 일어난 여객기 추락 사고, 기억하고 계십니까? 오늘부로 모든 사망자 신원 확인이 완료되어 수색을 종료하고 기체 수습만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214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여…
아, 그 사건이군요.
이치코의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그 날.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를 떠나보내야 했던 그 사고.
니노마에 이치코:하필 왜 이런 게...
이치코는 사라진 루하나가 떠올라 머리가 지끈해집니다.
이치코, 이성 체크.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7/28/11 |
굴림: | 1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성 감소 없음.
니노마에 이치코:1명... 실종?
어... 그래. 그렇구나... 그래.
라디오 따위는 뒤로 하고 협탁을 보기로 합니다.
노란 불빛이 은은한 전등과 그 앞에 놓여진 구식의 다이얼 전화기가 엔틱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그것보다 요즘 시대에 다이얼 전화기라니...
니노마에 이치코:다이얼 전화기...
전화... 기...
왠지는 모르겠지만 수화기를 들어봅니다.
수화기를 들어보아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다이얼을 돌려보아도 연결되지 않네요.
니노마에 이치코:안되나...
아... ... 이제 뭘 해야하지.
(서재의 그것... 자료조사 강행판정 가능한가요?)
강행할 수 있습니다.
다시 서재로 가서 종이 뭉치를 살펴볼까요?
니노마에 이치코:종이뭉치를 살펴봅니다.
이치코, 자료조사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60/30/12 |
굴림: | 61 |
판정결과: | 실패 |
와...
아니어떻게...
와....
한 번만 더 굴려볼까요??
니노마에 이치코:아...ㅋㅋㅋ가능한가요??
일단 해봅시다...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60/30/12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나 너 싫어
이..이런미친..
안타깝게도...
이치코는 종이 뭉치는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보이지 않아요.
그만 포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터덜터덜... 2층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하기로 합니다.)
2층의 침대방에서,
이치코는 몰려오는 피곤함에 이만 잠을 청하러 침대로 향합니다.
침대에 몸을 뉘이자 문득 잊고 있었던 ‘그 사람’ 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같은 공간에 있다며 자신을 찾아달라던,
수화기 너머의 그 목소리.
그렇다면 그는 이 곳에서 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 걸까요?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갑자기 다이얼 전화기가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설마, 전화가 걸려온 건가요?
니노마에 이치코:아! 깜짝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기를 들어봅니다.)
이치코가 전화를 받자 잠깐동안의 침묵 후 사람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러고 보니 전보다 훨씬 음질이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전화기: 니노마에 씨, 저예요. 기억하고 계시죠?
니노마에 이치코:응. 똑똑하게.
전화기: ... ... 전화, 받아주셔서 다행이에요. 몸은 어떤가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
니노마에 이치코:어... ...(아까 날붙이 생각함) 아니, 딱히. 지금 따뜻한 곳에서 쉬는 중이야.
전화기: 다행이네요. 오늘 밤은 푹 쉬세요.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 니노마에 씨. 당신이 이 곳으로 오게 된 원인은... 저예요.
제가 당신을 만나길 원해서, 그래서... 여기로 오게 된 거죠. 하지만 걱정하지는 마세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니까. 약속해요.
니노마에 이치코:너는 계속 거기 있는 거야?
그보다도 네가 어디 있는지를 말해줘야 내가 곤란하지 않아... ...
전화기: ...저는, 얼음 동굴 안에 있어요. 분명 당신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겠죠.
니노마에 씨, 그 동안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이제 다 괜찮아요. 전부 잊을 수 있을 테니까...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이치코는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다정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믿음이 갑니다.
그래요.
이제 다 괜찮아질 거라고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
허망함,
괴로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나요.
원망스럽기 그지없던 사고 따위는 이제 전부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렇다면, 이치코는 더 이상 루하나가 없는 곳에서도 웃을 수 있겠죠.
왜냐하면 이미 당신은 루하나의 목소리부터 서서히...
...
...
점차 감기는 눈꺼풀에 어둠이 당신의 시야를 가립니다.
피곤했던 당신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듭니다.
04. 결빙 結氷
이치코는 퍼뜩 눈을 뜹니다.
얼마나 잔 걸까요?
몸도 마음도 지쳤던 탓인지,
미처 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 채 잠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쉬울 건 없어요.
오늘은 어쩐지 날도 화창하고,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를 찾은 뒤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면 1층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올라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식탁에 수프가 담긴 냄비부터 식기까지 모두 세팅되어 있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밥인가...)
이와 함께 놓여져있는 작은 쪽지에는,
[이것이 내가 베풀어줄 수 있는 마지막 친절이네. 자네는 나가서 해야 될 일이 있지 않나?]
라고 쓰여있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 오늘 내로 그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겠지...
(자리에 앉아 스프를 접시에 담고 먹기 시작합니다...)
수프는 냄새 만큼이나 맛이 있네요.
식사를 마친 뒤, 집에서 나오면 순간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탐사자가 뒤를 돌아보면 오두막이 있었던 곳에는 어떤 흔적도 없습니다.
마치 집이 원래부터 그 곳에 없었던 것마냥.
그럼 탐사자에게 친절을 베푼 그 노인은 대체 누구였다는 건가요?
기묘한 일을 겪은 이치코, 이성 체크.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7/28/11 |
굴림: | 65 |
판정결과: | 실패 |
이성 2 감소.
이치코, 지능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5/27/11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젯밤 흐릿한 기억 속 그 사람은 자신이 얼음동굴에 있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허허벌판인 설원보다 숲 안에 동굴이 있을 확률이 더 크겠지요.
숲을 좀 더 걸어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니노마에 이치코:그래... 나오겠지.(숲 안을 저벅저벅... 걸어갑니다)
숲길을 걷던 이치코는 문득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는 것을 느낍니다.
꺼내보면 어제 설원에서 주웠던 향수입니다.
잊고 있던 그것을 다시금 손 안에서 굴리며 만지작거리고 있자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갑니다.
루하나도 이런 걸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고보니, 이젠 루하나를 떠올려도 그렇게 괴로워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무덤덤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고통도 슬픔도 전부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건 그저 다 잊어가는 과정일 뿐인 걸까요.
그렇다면 분명 당신에겐 좋은 일일 텐데도,
이치코는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루하나는 이치코에게 어떤 존재였던가요?
어떤 사람이었죠?
루하나는 당신이 잊어도 될 사람이었나요?
그 때, 갑자기 이치코의 정면으로 바람이 훅 불어옵니다.
강도가 꽤 센 바람에 이치코는 잠시 주춤하고,
고개를 든 다음 순간,
이치코의 앞에 펼쳐진 풍경은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있는 호수 뒷편의 얼음동굴입니다.
동굴 앞에 펼쳐진 호수는 사람 몇 명이 걸어가도 될 만큼 단단하게 얼어있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 얼음 동굴!
그래요, 이건 아마도 그 사람이 말했던 그 동굴이겠죠.
이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샘솟는 것이 느껴집니다.
호수를 건너 동굴로 들어가볼까요?
니노마에 이치코:(들어가봅니다.)
이치코가 호수 위를 걸어 동굴로 들어서면 그 내부가 푸른 빛의 얼음으로 뒤덮여있어,
걸음을 옮기는 이치코의 형상이 사방에 비칠 지경입니다.
얼음동굴의 아름답고도 묘한 분위기가 드디어 그 사람에게 도달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일직선으로 쭉 이어진 동굴 길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슬슬 지쳐갈 즈음,
통로같던 긴 길은 마침내 크게 뚫린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공터같이 넓다란 곳에 들어서자 온 시야가 파랗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린 기분이 드는데 어째서인지 그렇게 춥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곧이어 안쪽에서 이치코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베일을 쓴 사람: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 목소리.
그래요.
드디어 만난 것입니다.
베일을 쓴 사람: 제 목소리, 기억하시죠?
이제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수화기 너머의 그 사람은 파랗게 언 바위에 앉아 당신이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어째선지 베일을 쓰고 있네요.
나풀거리는 새하얀 베일에 얼굴은 물론이고 허리까지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왜 그런 걸 쓰고 있는 거야... 그래서야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잖아.
베일을 쓴 사람: 그건... 알아보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에요. 이건 개인적인 일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쨌거나... 니노마에 씨, 당신을 정말 보고 싶었어요.
니노마에 이치코:나는 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왜 내가 보고 싶었던 건데?
베일을 쓴 사람: 그건... ... (베일 뒤에서 쓴 웃음을 흘리고는, 답하지 못했다.) ... 곧 니노마에 씨는 이 곳을 떠나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뒤에는 머지않아 이 곳에서의 일도 잊어버릴 수 있겠죠...
... ... 저, 그 전에 하나만 부탁할 수 있을까요?
그의 다정하던 목소리에서 어렴풋이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이윽고 그는 이치코의 손목을 살짝 끌어 제 옆에 앉게 하며 몸을 붙여옵니다.
베일을 쓴 사람: 아주 잠시만, 이러고 있을게요.
베일 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나며 곧 당신의 어깨에 그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기댑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지친 기색은 착각이 아니었던 듯 합니다.
그는 이치코만큼이나 피곤했는지,
꽤 편안한 모습으로 잠에 듭니다.
그런 그를 보고있자니 이치코도 서서히 졸음이 밀려오는 것 같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 잠들었다...
... ...
05. 해빙 解氷
깜빡 잠이 들었나 보네요.
이치코가 눈을 뜨자 그 사람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습니다.
동굴 밖으로 나간 걸까요?
이치코가 그를 찾아 바깥으로 나가보면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베일을 쓴 사람: 일어났나요? 니노마에 씨도 피곤할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어요.
니노마에 이치코:뭐... 하고 있던 거야?
베일을 쓴 사람: 특별한 걸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아마... 니노마에 씨도 이 쪽으로 오신다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니까요.
그가 서있는 곳은 얼음호수의 한가운데.
그의 말처럼 빛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자리였습니다.
이치코가 그 사람의 곁으로 이동하자,
해가 저물고 있는 중인지 황금색 햇빛이 얼음 위로,
그의 위로 화사하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니노마에 이치코:... 예쁘다... ...
이치코가 다가오자 그는 작게 읊조립니다.
베일을 쓴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잊혀지는 게 목소리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그렇게 말을 건네는 그의 목소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기엔 너무도 친숙합니다.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요.
그는 고요를 유지하며 탐사자를 지그시 바라보는 듯 합니다.
낯선 시간,
낯선 풍경,
낯선 경험 속에서 가장 낯설어야 할 이 사람은,
흰 베일에 반사되는 빛의 파편조차 그리운 느낌이 들게 합니다.
어쩌면 내가...
...
내가 뭔가를 잊어버리고 있던가요?
그저 불쑥 솟아오른 의구심이었지만,
설원에 있던 비행기의 잔해,
그 근처에서 발견했던 향수병,
무엇보다 다정했던 그 목소리.
어떻게 생각해도 앞뒤가 맞아요.
의구심은 곧 확신으로 변합니다.
이치코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왜 진작에 떠올리지 못한 걸까요?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를.
그가 쓴 베일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이와 동시에 얼핏 그 얼굴이 보인 것도 같았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같잖은 천 하나로 가려진 이 사람의 정체를요.
니노마에 이치코:아... 아아... 아아아...!!
이젠 그것을 확인할 차례이겠지요.
베일을 쓴 사람: ... ... 니노마에 씨?
니노마에 이치코:(가까이 다가가선, 홀린 듯 네가 쓴 베일을 확 벗겨버리려고 해.)
이치코는, 손을 뻗어 그가 쓴 베일을 젖혀올립니다.
펄럭이며 넘어가는 흰 천 아래에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슬픔이 역력한...
루하나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맞잖아... 맞잖아. 맞잖아, 이하 루하나...
이하 루하나:... 니노마에 씨. (그 답지 않게 언뜻 눈빛이 흔들린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군요. 역시 저는... 니노마에 씨를 속이기에는 역부족인가봐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니노마에 이치코:나 지금 루하나 쨩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엄청 많아. 알아? 엄청... 엄청 많단 말이야... 왜 그런... 같잖은 속임수를 써가지고...
이하 루하나:... 전부 답해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잠시 심호흡하고는, 마음을 굳힌 듯 말을 꺼낸다.) 이건... 모두 저의 욕심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당신이 저를 떠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말꼬리를 흐리곤)
니노마에 이치코:무슨 마지막이야, 그런 거 없어, 우리 앞으로 쭉 함께일 거잖아, 그렇지? 루하나 쨩, 지금 내 앞에 이렇게 있는걸...
이하 루하나:(당신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 그 때, 그 비행기는 이 곳, 설원에 추락했어요. 저는 마지막 폭발 전에 유일하게 살아나올 수 있었죠. 하지만 그건 단지 죽게 될 시간을 조금 늦춘 것밖에 되지 않았어요. 이런 설원에서, 그런 몸으로 구조가 오기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까요.
... 그런 저에게 소원이 있냐고 물어온 존재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니노마에 씨, 당신이 저를 잊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답했어요. 그러니까, 니노마에 씨가 저를 잊은 건 당신의 탓이 아니에요. 그저... 제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진 것 뿐이겠죠.
니노마에 이치코:루하나 쨩을 잊는다니, 왜... 왜,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 싫어... 지, 지금이라도 같이... 같이 가자고. 돌아가자... 둘이 같이...
이하 루하나:(살짝 고개를 저어보였다. 거절의 표시인 걸까.) 저는... 저로 인해 니노마에 씨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저를 잊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했어요. 하지만 그런 소원을 빌고서도, 저는... 그 사람이 준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못했어요. 당신을 만날 마지막 기회를.
... ... 반드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었죠? 제 소원도 이루어졌고, 마지막으로 당신을 만났으니 이제 정말 작별이에요. 돌아가면 다시 저도, 이 곳에서의 일도 전부 잊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일상으로 돌아가주세요. 니노마에 씨가 있을 자리는, 그 곳이에요.
니노마에 이치코:아냐, 아냐... 난 루하나 쨩 절대 안 잊어. 못 잊어. 왜 루하나 쨩은 돌아가지 못하는 거야... 왜 그런 거야, 왜... 지금 루하나 쨩은, 내 앞에 있는데...(흐느끼며 말한다.) 이해 못하겠어. 인정 못하겠어. 작별도 못해. 다... 다 꿈이잖아. 분명 돌아가면 루하나 쨩이 반갑게 맞아줄 거고... 끔찍한 꿈을 꿨다고 이야기하면 나한테 다정하게 웃어줄텐데, 루하나 쨩이 없을 리... 없잖아... ... ...
그 순간, 마치 이치코의 말에 반하듯이 날카로운 파열음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지릅니다.
분명 단단히 얼어있는 것 같던 호수였는데, 루하나가 서 있는 자리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뭐, 뭐야... 뭐냐고...
왜... 왜 이러는 건데...
이치코가 이 사실을 알려주어도, 루하나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요리부동입니다.
이하 루하나:니노마에 씨와 함께 봄을 맞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씁쓸하게 미소를 짓는다.) ...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니노마에 이치코:아냐! 기다릴 거야... 봄이 올 때 분명 루하나 쨩도 올 거라고... 난 믿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이하 루하나:... 니노마에 씨, 제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비록 니노마에 씨는 저를 잊겠지만, 저는 언제나 당신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한 번 더 니노마에 씨를 보고, 마지막까지 당신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하답니다.
... 역시 마지막은 웃고 있는 게 좋잖아요? 언젠가 한 번 말했던 것 같은데.
니노마에 이치코:... ... 그래... 그래. 그게 루하나 쨩이 바라는 거라면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아...(눈물 가득 웃으며) 누가 뭐라고 해도, 언젠가는, 적어도 죽기 전에는 너에 대한 걸 반드시 기억해낼 거야. 네가 널 기억하고 있다면 말이야... ...
당신의 말에, 루하나는 그저 미소로 답할 뿐입니다.
먼 하늘에서부터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합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순홍빛 햇살이 시리도록 어두운 밤을 몰고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탐사자를 응시하는 루하나의 눈동자는,
빛에 반사되어 당신을 한껏 담아내고 있습니다.
꿈을 깨우듯 녹아가는 호수의 얼음과,
두 사람의 몸을 부드러이 감싸는 붉은 황혼이,
여정의 종말이 다가옴을 알리는 것만 같습니다.
루하나가 빈 소원은 이치코가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루하나를 데리고 호수 밖으로 나오려 할 수도,
루하나를 두고 호수의 밖으로 나올 수도.
또, 루하나와 함께 호수에서 수몰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고 있나요?
니노마에 이치코:그러니까! 내가 널 기억할 수 있도록 내 손을 잡아달란 말이야!(눈 앞의 너에게 손을 힘껏 내다 뻗고.)
이하 루하나:... 저는... (그의 눈에서는 언뜻 망설임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당신의 말에 따르겠다는 듯이, 떨리는 손으로 그 손을 마주잡았고.)
이치코는 역시 소중한 사람인 루하나를 두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을 잊다니요.
이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라니요.
그런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는 새에 두 사람의 발 밑 얼음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쩌적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 호수의 끝에서 끝까지 닿아버립니다.
루하나를 구하려면 이제 단 하나의 방법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호수 밖에 닿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뛰는 것 뿐이죠.
니노마에 이치코:루하나! 꽉 잡아! 절대... 절대 놓지 마!!
이치코는 루하나의 손목을 잡아 이끌어 힘껏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치코, 루하나, 민첩 판정.
니노마에 이치코:
기준치: | 50/25/10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하 루하나:
기준치: | 75/37/15 |
굴림: | 100 |
판정결과: | 대실패 |
이런!
깨져가는 얼음호수 위를 갑자기 달려나가기엔 너무 버거웠던 건지,
루하나가 채 나오기도 전에 그만 얼음이 와장창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동시에 루하나는 이치코의 손을 놓쳐 깊은 수면 속 어둠으로 빨려들어갑니다.
니노마에 이치코:루하나!!
정말 루하나가 힘겹게 눈을 감고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는 걸까요.
정말 이렇게 끝나버리는 걸까요.
이치코는 온갖 감정이 북받치고 터져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니노마에 이치코:(이런미친... 근력판정가능한가요...)
(루하나를... 끌어올릴 수 있나요...)
루하나는 이미 호수 밑 깊숙히 빠져들어가,
더는 모습 조차 보이지 않아요.
정말 이대로 끝인 걸까요?
그런 당신의 앞에, 머리가 희게 센 노인이 홀연히 나타납니다.
이치코는 그를 보자마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분명 이 사람은 숲에서 이치코에게 도움을 준 그 노인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노인은 온 공간을 뒤흔드는 듯한 음성으로 무어라 말하더니 서서히 모습을 감춥니다.
동시에 이치코의 주위에는 흐릿한 태양빛만이 가득 차오릅니다.
이치코의 의식은 잃어가는 시야를 따라 점점 흐려지기만 합니다.
그 뒤엔 완전한 암전 뿐이었습니다.
...
...
당신은 눈을 뜹니다.
이치코는 자신의 방, 침대 위에서 잠이 깹니다.
마치 길고 긴 꿈을 꾼 것만 같아요.
이하 루하나:... 니노마에 씨.
니노마에 이치코:… … !! 루하나 쨩?
이하 루하나:안녕히 주무셨나요?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늘따라 오랫동안 주무셔서 걱정했었어요.
... 하지만 아무렴 상관 없습니다.
전부 꿈일 뿐이었을 테니.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그래요.
이 곳이 바로 나의 일상인걸요.
ED 2. 꿈 속의 기억
KPC, PC 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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